2020/10/22
1.
최근 술을 안 마시고 있었는데 오늘 와인이 너무 마시고 싶었다. 레드든 화이트든 상관 없고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그 느낌만을 기대하며 (집앞에서 급하게 와인을 사야 할 때면 늘 들르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 가는데 건물이 없는 거다?! 아무래도 안 간 사이에 없어진 듯.. 그나마 와인 셀렉션이 괜찮다는 이마트24에는 세 종류인가밖에 없고 세븐일레븐에도 없고 마지막으로 씨유에 갔다. 열 병 정도 있었는데 하나는 화이트 나머지는 레드. 그렇다면 레드 중에 골라야지. 그나마 마셔본 적 있는 몬테스 까베르네 소비뇽을 집었다. 가격도 얼마인지 모른 채.. 그러고 병을 들고 집까지 걸어오는 길 이 장면은 꼭 알콜중독자인데 하는 생각이 ㅎㅎ
뭔가 막막해서 며칠째 미루던 과업을 30분만에 끝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땄다. 첫 모금을 머금고는 아. 역시. 와인이야말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주종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은 심정. 이어서 넷플릭스 레베카를 틀었다. 어제 공개된 따끈따끈한 작품. 전반적으로 원작보다 밝은 느낌이고 맥심과 '나'의 사랑이 보다 전면에 등장한다. 아니 오늘 보면서 계속 '나'의 이름을 기억해내고 싶었는데 지금에서야 원작에서도 '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애초에 그녀는 이름이 없었다. 너무한 듀 모리에.. 암튼 마지막 장면을 놓고 봤을 때 mysterious한,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묘한 매력(심지어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지는)은 역시 원작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엔딩이 좋다. 링컨 라임이 말했던가. 죽은 사람들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레베카를 꼭 고딕 미스터리로만 읽어야 하나....? 히치콕의 영화가 있는지는 몰랐다. 넷플 레베카는 히치콕판의 리메이크인지? 듀 모리에 레베카가 레퍼런스인건지? 아무튼 히치콕 레베카를 본 사람들은 시간 아깝다는 평이 주.
2.
그러고 보면 또 링컨 라임 시리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 지금 3권째 읽고 있다. 과학수사 내용은 관련 지식이 없는 관계로 항상 대충 넘어가지만, 복잡하지만 탄탄한 플롯에 계속 감탄 중이다. 그리고 링컨과 아멜리아의 관계를 지켜보는 게 너무 즐겁다고.... 사건 수사만큼이나. 둘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어서라도 열심히 읽을 듯. 근데 제프리 디버가 40대 후반? 50대 초반에 시리즈 첫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저씨가 쓴 장면들에 설렌다는 게 솔직히 좀 화나긴 한다.ㅋㅋ 지금까지 읽은 추리, 수사물에 등장하는 애정전선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주인공의 연애 상대들이 아멜리아처럼 일을 함께 하는 동료가 아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링컨과 아멜리아는 셜록-왓슨에 대비되기도 할 만큼 둘 중 하나의 비중을 무시할 수가 없으니까.
시리즈물의 팬이 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제나 기다릴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뜻도 되겠다. 요 네스뵈, 마이클 코넬리, 루이즈 페니, 제프리 디버. 물론 이 세상에 지금은 없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고맙다. 마이 셰발, 페르 발뢰, 스티그 라르손, 에드 맥베인.
3.
아침 출근길에 브렌델의 크라이슬레리아나를 들었는데 황홀했다. 뭐라 더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네. 절제된 열정과 평온함. 호로비츠보다 훨씬 좋다. 뒤에 이어지는 어린이 정경도 다시 보게 되었다. 다시 듣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슈만을 다시 발견하는 2020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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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Brendel의 Schumann: Kreisleriana, Kinderszenen & Fantasiestücke, Op. 12
앨범 · 1992 · 29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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