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30 오슬로, 비겔란 공원
목요일에 (나의) 부모님이 스톡홀름에 올 예정이었으므로 그때까지 거기만 가면 되는 일정이었다. 어차피 동진해야 했으므로, 이번에도 그 길에서 들르고 싶은 곳을 가기로. 나의 원픽은 오슬로였다.
2012년 4-5월 일주일 정도 노르웨이에 왔을 때, 1박 2일로 프라이케스톨렌에 다녀온 걸 빼고는 계속 오슬로에 있었다. 친구들이 교환학생으로 있던 오슬로 대학교, 이름 모를 해변, 아케르스후스 요새, 스키점프대, 왕궁이 있는 시내, 국립미술관 등등을 쏘다녔다. 그중 단연 기억에 남고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 비겔란 공원이었다. 압도적인 공원의 크기, 선명한 초록, 여유, 그리고 내 친구 H와 함께 합창단을 같이 하던 아주머니(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의 개 Tara와 함께 한 산책.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비겔란 파크는 특별한 곳이 되었다.
비겔란의 조각들은 쉽게 잊기 어려웠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 생각했다, 이 사람을 알아야겠다고. 사실 마음 속에 수년째 간직하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가 하나 있긴 하다. 벌써 8-9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실행을 시킬 때도 되었건만! 그의 작품의 어떤 점이 우리 마음을 이다지도 사로잡는 걸까. 그냥 삶 자체가 꾸밈없이 정직하게 드러나 있다. 진실하다고 할까. 어린 시절의 명랑함, 사랑하는 사람들, 싸움, 분노, 인생의 지난함과 고단함, 그리고 죽음까지. 나도 모르게 하나하나에 멈춰서 긴 시간 보게 된다.






거대한 나무 아래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하는데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왔다. 사진의 옷을 보면 알겠지만 한겨울 패딩을 입을 날씨였고, 비까지 오니 체할 것 같아 카페(비겔란 동상 바로 뒤에 있는)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 화장실을 가려는데, 카드로 결제를 해야만 화장실 문이 열리는 구조였다. 카드를 긁고 화장실로 들어가는데, 내 뒤에 모녀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결제도 하지 않고 내가 연 문으로 뒤따라 들어오는 것. 일단은 당황해서 두 칸 중 한 칸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열받아서 나와서 세면대 앞에서 한 마디 했다. 여기 돈 내고 들어오는 곳인 거 모르냐고. (뻔히 알았겠지만) 그들은 몰랐다고, 다음부터 안 그럴 거라고 오히려 나한테 큰소리. 밖에 가보니 남편 옆에 그 가족의 남자가 서 있더라. 아마 내 남편이 결제해서 들어가면 또 따라 들어갈 생각이었겠지. 남편은 화장실도 안(못) 가고 커피 먼저 마시러. 염치 없는 사람들 때문에 기분만 나쁘게 됐다. 일 년 지났는데도 쓰는 지금 또 화나네. 아무튼 커피는 맛나게 마셨고, 다시 복잡한 오슬로 시내를 통과해 스웨덴 방향의 고속도로를 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