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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7

winterwald 2021. 4. 28. 00:52

지난 주말이 생일이었는데, 자정이 지나자마자 두 사람에게서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기프티콘 선물을 받았다. 나는 본래 카카오톡에 생일 공개를 설정해놓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알았나 싶어 물어보니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뜬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너무 당황해서(왜 그렇게 당황했는지 모르겠다. 누구라도 더 보기 전에 지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앱에 들어가 비공개를 했는데도 아직도 보인단다. 결국 카카오스토리까지 깔아서 카카오톡과의 연동을 해지하고 탈퇴까지 해버리니 그제서야 아무 알림도 보이지 않는다. 축하해주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았냐 아직도 알림이 떠있냐 같은 이야기만 해대고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다. 그렇지만 그냥 이런 상황이 나랑 안 맞다. 크게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다. 내 목소리가 크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목소리가 내 행동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사랑받는 것을 싫어하는 이는 없겠지만 나를 알아달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치고 싶지는 않다. 어렸을 때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이게 내 본래 성정인데 적극적인 외피를 입고 어린 시절을 살았을 수도 있겠다. 어떤 게 진실인지 궁금하다. 이러나저러나 그 모두가 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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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을 다 읽었다. 앤드루 솔로몬의 테드 영상 몇 가지를 나중에 볼 영상 리스트에 추가해두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짐 파슨스와 정말 닮았다!) 마지막 챕터인 '희망'에서, 우울증을 겪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을 거쳐 살아남고 변화한 경험 역시 의미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의 슬픔에 뛰어드는 사람이 되었다고도. 헨리 나우웬의 '상처입은 치유자'가 생각났고, '그래도 내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어'라는 내가 자주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설명하기가 힘든데,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든지 그냥 그 길을 거쳐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지나온 길과 순간들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나를 직조한 경험들ㅡ많이 나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다ㅡ에 어찌 됐든 감사한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도 있지만 이미 일어났기 때문에 형성된 나의 일부분도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은 그 경험으로만 생겨날 수 있었을 것이다. 불운을, 슬픔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자신의 정서 상태를 완벽하게 통제하기를 원하는지, 슬픔을 두통처럼 없애줄 수 있는 감정의 진통제를 먹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의 본질적인 대립을 포기하는 것, 그 대립과 그에 따르는 고난을 반영하는 음울한 기분을 종식시키는 것은 곧 인간답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639p)

 

"그러나 나는 7년 전 지옥이 기습적으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나의 일부분, 영혼이라고 불러야 할 것을 발견했다."

 

그의 글쓰기를 사랑한다. 속을 다 드러내보이지만, 그래서 타인으로서 종종 보기 싫은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 읽고 싶은 글이다. '경험수집가의 여행'에서 그린란드 관련 글을 너무 재밌게 읽은 게 이 책으로 오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인데, 그린란드 챕터처럼 자신의 경험을 적은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팩트를 알려주는 부분까지도 흡입력 있게 잘 써 재미있게 읽었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도 읽을 것이고, 생각난 헨리 나우웬도 이어서 읽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