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양영희
일제 시대, 4.3의 참화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산 사람들이 있다. 분단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니 그곳에도 북을 지지하는 사람, 남을 지지하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양영희 감독의 부모는 전자였고, 그것도 아주 열렬한 지지자였다. 조총련의 간부였을 뿐 아니라, 아들 셋을 북으로 보냈다. 그러나 북한 상황은 나날이 나빠졌고, 딸은 성인이 되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부모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마주하고 멀어지고 싶었다. 그 정체를 알아야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썼다.
앞의 두 영화를 거쳐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결국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찾는데, ‘어머니’와 4.3을 연관시킬 수 있게 되면서다. 양영희 감독은 북한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어머니를 많이 원망했는데, 제주에 와서 4.3의 흔적을 마주하고 보니 생각보다 너무나 거대한 일이었다고. 남한 정부가 아닌 북한 정부를 선택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이 특별히 고단한 것일까. 기가 막히긴 한다. 일본에 원폭이 떨어졌을 때 제주로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어머니는 제주에서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온다. 이 어머니가 30년생이고 안강 할아버지가 32년생인데, 할아버지도 경주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책에 보면 제주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들렸다고 나온다 가까우니까 그랬겠지). 그곳에서 형 둘을 잃었고,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전쟁터에 나갔다.
20세기 끝자락에 태어나 21세기를 사는 나로서는 그저 너무 기가 막혀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한테 일본 살던 이야기, 전쟁 이야기 자주 듣는데(20년째 듣는 단골 레퍼토리가 있음) 솔직히 상상도 가늠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못 버텼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지금도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는 이런 일을 아주 생생하게 마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2022년에.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의 작은 개인을 생각해보면. 운명 같은 것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