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a reader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번 다시 하지 않을 일

winterwald 2018. 5. 31. 12:06

이 책을 엮고 옮기신 김명남 번역가님이 몇 년 전 번역해 블로그에 소개해주신 글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이하 DFW)를 처음 알게 된 계기였다. 고백하자면 당시 그 글이 크게 재밌지는 않았다. 내가 테니스를 잘 모르는 데다, 모바일로 읽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았기 때문(종이책으로 40쪽 가량. 근데 이번에 책으로 읽었을 때는 좋았다). DFW는 여기저기서 많이 보게 되는 이름이었지만, 선뜻 책을 집어들 기회는 딱히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번역가님이 이번에는 작정을 하시고(!) 9편의 에세이를 선택하고 번역하여 책으로 내셨다. 나는 선생님의 팬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읽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부산에서 DFW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된다 하여 바로 신청을 하고 (반강제로) 읽게 되었다.


작가가 글을 쓴 후에 한 행동을 기준으로 (사후적으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DFW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기에, 책 곳곳의 체념과 허무를 그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되더라. 물론 DFW는 20년 넘게 우울증을 앓아왔고 이 책 역시 그런 월리스의 산물이니 당연한 연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치만 그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서 나는 소리내어 웃었고, 이 사람의 비꼬기와 나름의 유머가, 미친듯한 각주가(번역가 선생님께선 '월리스는 각주'라고 하심ㅋㅋ) 꽤 마음에 들었다.


문체 자체가 워낙 통통 튀고 비꼬기 투덜대기의 달인이라 문장의 인상만 따지자면 가벼운 글에 가까운데 의외로 내용은 19, 20세기의 산물이다(뭐 DFW는 20세기에 태어났으니까!).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예프스키'에서는 문학 작품이 제시해야 할 도덕적 기준에 대해 말하고 작품에 드러난 강한 신념을 비웃는 세태를 오히려 비웃으며, '랍스터를 생각해봐'에서는 랍스터 축제 취재를 보내놨더니 '살아 있는 랍스터를 눈 앞에서 바로 죽여 먹는 행위'의 윤리성에 대해 고민한다. 가치, 기준, 도덕에 대한 이런 진지한 탐구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체와 결합했다는 점이 DFW 글의 큰 매력인 것 같다. "그냥 감각적인 글인 것 같은데 통찰력.. 뭐지.." <-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떨쳐지지 않는 생각은 어쨌든 DFW가 자살했다는 사실이다. 평생을 자기 자신과 싸웠고 그 과정에서 과잉의 글을 계속 쓸 수밖에 없었던 이 사람의 생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의 빛나는 통찰들에 놀라워하면서도 끝내는 너무나 마음이 아픈 것. 북토크에서 번역가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그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의 글을 돋보이게 한다는. 또 한번 개인의 행복과 행복한 상태에서는 나올 수 없는 위대한 성취에 대해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