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a reader

미친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

winterwald 2020. 1. 2. 21:03

2020년의 목표 중 하나는 읽은 책에 대해 짧게라도, 아주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는 것이 되겠다. 다짐을 실천하고자 이렇게 둘째날부터 게으름을 이기고 글을 쓴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론 파워스

 

나도 모르게 정신증이나 정신증이 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읽게 된다.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주위에 있는 정신증을 가진 사람의 가족들, 그리고 정신증은 아니지만 정신장애가 있는 이웃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그들과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의 일환이기도 하다. 

 

구성 단계에서 이 책은 사회가 정신증에 어떻게 대처했는지의 역사와 현 시점에서 정신증 환자/가족들과 사회의 대립을, 그리고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희망을 담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이런 내용들이 아주 자세하고 길게 쓰여 있어서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은 조현병으로 둘째 아들을 잃은 이야기와 첫째 아들이 그 병마와 싸워나가는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당연하게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이 부분이겠지). 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지만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 줄 것이기에 대단한 용기를 내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정신증 환자들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 때리고 고문하고 방치하고 죽이는 한편, 어떤 때는 정신증은 단지 구성된 개념이며 정신증을 가진 있는 사람들은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으므로 인권 존중의 차원에서 비자의적 치료를 강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둘 모두는 진실이 아니다. 정신증 환자는 인간이고 우리의 이웃이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존재인 동시에, 병(조현병을 경험할 수도 있는 유전적 가능성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있으며, 이후 환경에 의해 발현될 수 있다)에 의해 이미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자질을 상실한 상태기도 하다. 두 가지가 모두 고려된 상태에서 개입과 처벌에 관한 법이 제정되고 적용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을 두 형제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세상을 등진 일이 큰 충격이었을 텐데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딘의 용기와, 론과 아너리 부부의 사랑과 헌신에 존경을 보내고 싶다.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많은 사람은 사실 미친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모두가 같이 살기가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케빈의 첫 솔로가 시작됐다. 밴드가 일순 조용해지더니 케빈이 만드는 음들이 혼자서 통통 튀고 춤을 추며 앰프를 통과해 객석 사이로 타고 올라가 관객의 귓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왔다. 이어서 구부러진 베이지색 음향 제어 타일을 타고 흘러 강당 밖으로 탈출한 다음 초저녁 별들이 있는 곳을 향해 곧바로 위로 솟아올랐고, 그런 다음 깊은 우주로, 여태까지 연주된 다른 모든 음악과 함께 영원 속으로 잠겼다." pp. 374-375, 강조는 나

"그러므로 이 이야기를 쓰는 더 큰 목적은, 우리가 너무 늦게 깨달았던 위급성을 다른 가족에게 미리 알려 그들이 그 병과 싸우는 무기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증상이 발생하면 전문가들이 그렇지 않다는 확신을 심어줄 때까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것. 재빨리 행동하고 계속해서 행동할 것. 필요하다면 당신이 동원할 수 있든 모든 순간을 동원할 것. 거친 세상을 살아가려면 거친 충고가 필요하다." p. 453

 

"그들의 욕구, 그들의 이야기, 우리 삶에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웃이 내민 손길에 응답하는 그들의 능력은 병든 사람 자신은 물론 우리 이웃들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건강한 삶, 적절한 지원을 받는 삶, 보람 있는 삶을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신질환자를 만난다. 그들의 노력은 우리에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충동, 바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충동을 되찾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사회적 분투, 소비에 대한 집착, 냉소주의, 권태, 고립에서 벗어나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원천임을 다시금 소중하게 깨닫는 것이다." p. 567, 강조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