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the place

2019/09/12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히혼

winterwald 2020. 6. 10. 22:45

친구와 이 날 오전에 뭘 했던가? Manteigaria라는 에그타르트 집을 하나 더 찾아 맛을 보고, 점심을 먹고는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갔다. 3박 4일 합류가 끝나고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3일 전에 마지막으로 운전한 후 주차해둔 차에 짐을 실어 출발하는데, 공사중이라 막힌 길도 나오는 등 포르투 시내 운전에 진땀을 빼며 친구를 공항에 내려주었다.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 계획이 없던 우리는 근처에서 제일 유명한 곳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갔다. 정말 단순히 그 이유였다. 우리는 어차피 북쪽으로 올라가야 했고, 즉 할 일이라고는 올라가는 것밖에 없었고, 그저 그 (노르웨이나 덴마크에) 올라가는 길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우리가 생각해야 할 내용의 전부였다. 올라가는 김에 '그' 산티아고에나 한 번 가보자, 했던 것.

 

뜨거운 날이었다. 스페인 국경을 넘었다.

도시의 중심부는 고도가 꽤 높은 곳에 위치한 데다 유럽 어디나 있는 좁은 옛 돌길도 갑자기 나오는 등 수동인 차를 몰고 가기에는 운전이 예상보다 고단했던 기억이 난다. 주차요금 계산기가 고장난 외곽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조금 걸어 구시가지의 성당으로 갔다.

 

성당 내부는 공사중이라 엉망이었다. 한 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얼떨결에 따라 서서 기다려보니 야고보(가 맞겠지?)의 동상 뒷편으로 한 번 지나가는 줄이었다. 물론 나 같은 사람에게는 동상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에 불과했지만 내 앞의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은 야고보의 등을 안고는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다. 

 

정문 앞 광장에는 순례를 갓 마친 것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저렇게 어깨동무를 하며 원을 그린 채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간절함과 홀가분함과 기쁨이 느껴졌다. 나는 당장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생각이 없지만, 그 긴 길을 걷기로 결정하고, 걸어내고, 이곳에 당도했을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한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동시에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동네였다.

 

스페인에서 더 보고 싶은 곳은 없었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갈까 이날까지도 고민했지만 결국 산티아고가 우리가 구경한 마지막 스페인 도시가 되었다. 히혼이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곳에서 하루 자고(앞으로 이런 일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오렌지 유심을 사고 데카트론 쇼핑한 것을 빼면ㅋㅋ 스페인 북해를 구경하며 달린 게 끝.

 

우리는 신혼여행으로 프로방스를 다녀온 이후 두 번째로 함께 프랑스에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