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a reader

2020/06/23

winterwald 2020. 6. 23. 11:16

벌새 시나리오집을 읽다.

138분으로 만들기엔 좀 짧지 않나 하는 생각. 

물론 영화로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는 것도 안다.

 

나의 기억을 건드린 장면은, 은희가 밤에 아파트 다른 동을 물끄러미 보는 씬.

가족들이 다 자는 밤, 불 꺼진 거실에 나와 아파트 앞 동에 불 켜진 집을 하나하나 세고 가만히 바라보던 기억. 그래도 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이 순간에 같이 깨어 있구나, 하는.

 

그런데 내 머리속에 그려지는 그 풍경과 일치하는 아파트 단지가 내가 살아온 현실에는 없다. 현대 2차도, 럭키도 아니야. 그 그림은 어디서 왔지?

 

시나리오 뒤에는 쟁쟁한(부정적인 의미 아님) 사람들의 평론?이 실려있다. 어쩌면 이 파트가 더 좋을 수도.

 

*

앨리슨 벡델과의 인터뷰에서 김보라 감독은 이 이야기를 다 풀어내려면 적어도 2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판단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벡델은 이야기 없이 삶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 그러나 촘촘한 바늘땀 같은 플롯이 숨어 있다는 점이 훌륭하다고 했다. 또 은희를 통해 어떤 주변부에 있는 인간이라 해도 완전한 인간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그런 힘이 있는 영화라는 짐작이 들기에, 사실 안 볼 도리가 없네. 전작인 <리코더 시험>도 챙겨 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