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데이비드 엡스타인, 2020
원제: Range
이 책을 읽기 몇 주 전에 '왜 사람들(나 포함)은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할까?'라는 질문이 떠올라 노트에 적었다. 경기와 상관없이 돈을 잘 벌 수 있어서?(사실일까?) 뭔가 한 분야에 정통한다는 건 멋있으니까? 아직 답은 잘 모르겠다. 멋있긴 한 것 같다. 아무튼 전문가 혹은 전문직에 사람들이 선망을 가지는 건 확실하고, 전문가의 말이라면 신뢰를 보낸다. 그러나 정말 전문가가 되는 것만이 성공적인 삶의 열쇠일까?
꼭 그런 건 아니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이 자기의 신념과 부합하는 자료를 찾아 접하면서 확증편향/자기합리화가 강화된다지만 나는 어쩜 이렇게 이 책을 잘 찾아냈는지, 이 책이 "그래 너는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니야"라고 해주는데 엉뚱한 위로를 깊이 받아 정말이지 울 뻔했다. 이런 위로가 오해라 해도, 오독이라 해도 사람은 그냥 이런 게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누구인가? 온갖 것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온갖 것을 넓고 얕게 아는 사람의 대명사. 후후 며칠 전에는 옆자리 분이 자기 아는 사람이 '라브리'에 있었다고 하시는데 - 오 저 알아요!라고 하며(자세히는 모름) 얼마나 뿌듯했던지. 요즘은 관심사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 내가 종합가적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문제해결력이 뛰어난 종합가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전문가(specialist)에 대비해 종합가(generalist)를 옹호한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종합가는 오만 것을 아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여러 분야를 경험한 사람이라고 해야 맞겠다. 각 분야의 문제해결 방식은 다를 수 있으며, 그 분야들의 문제 해결 경험이 새로운 문제해결에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핵심. 이 책은 첫머리에서 조기 교육의 상징인 타이거 우즈와, 이것저것 하다 비교적 늦게 테니스에 정착하게 된 페더러를 비교하면서 조기교육만이 살 길이라는 신화 속에 사는 우리에게 '그 길이 아니라도 성공적으로 살 수도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뭐든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그 분야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게임의 룰이 비교적 명확하고 "협소하게 구축된 친절한 학습 환경에서만"(399p) 그러하다.
이 모든 연구 결과들은 경영계가 성공한 학습의 사례로 즐겨 드는 사례들 중 일부에는 안 좋은 소식이다. 폴가르 자매, 타이거 우즈, 그리고 어느 정도 스포츠나 게임에 토대를 둔 유추 사례들이 그렇다. 골프에 비하면 테니스 같은 스포츠는 훨씬 더 역동적이다. 선수들은 매 순간 상대방, 코트 바닥, 때로는 동료에게 맞추어 반응을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테니스도 병원 응급실에 비하면 그 스펙트럼의 친절한 쪽 끝에 아주 자깝다. 응급실의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를 보자마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자동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훈련받지 않은 것도 배우고, 직접 경험한 것과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교훈도 받아들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54p)
우리의 교육은, 특히 조기교육의 경우 그 분야의 구체적인 기술을 익히는 것이 핵심이며, 결국 그 기술에만 머무르게 된다.
훈련의 폭이 전이의 폭을 예측해 준다는 것이다. 즉 무언가를 더 다양한 맥락에서 학습할수록, 학습자는 더욱더 추상적 모델을 구축하며, 구체적인 사례에 덜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학습자는 전에 접한 적이 없는 상황에 지식을 응용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창의성의 본질이다. (116p)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는, 정말 생각도 못한 문제해결 방식이 있다. 생각도 못한 사고방식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분야를 넘나들며 적용하고 응용하는 방식이 또 하나의 성공 포인트라고 본다. 계속 '성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글쎄 저자가 말한 '성공'이 단순히 성취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읽기에 이 성공은 성취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되어가는 것', '나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인간 안에 선험적으로 무언가 되어야 할 모양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그때 변화하는 '나'라고 할지라도) 나를 찾는 것,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내 안의 무엇인가를 발견해감으로써 나 자신이 된다면 그게 성공이 아닐까. 이 일은 참 어렵고 힘들지만 또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그 glimpse를 아는 사람은 그 순간이 얼마나 빛나는지 알리라.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성공을 위한 길로 새로운 제안을 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가능성을 찾아가는 작업이(직업으로서의 가능성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언제나 객관적 성취를 담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무튼 스피노자의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판다"는 말을 생각했고, 장강명의 이 칼럼도 이어지는 생각의 길에 있었다.
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48164.html
튀려고 할수록 사라지는 개성, 그 얄궂음에 관하여
[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www.hani.co.kr
결국 다시 '나를 아는 것'으로 돌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치만 가만히 앉아서 나를 들여다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Range를 넓히고, 지금 내 앞에 주어진 가능성들 중의 하나로 돌진하여 살아보고, 아니면 또 길을 틀고 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10년 전부터 친구들에게 해오던 말인데, 삶이란, 하나의 목표를 저기에 두고 그곳을 따라 난 길을 걸어가는 그림이 아니라, 그때 그때 맞아보이는 방향을 선택해 걸어간 후 돌아보면 길이 되는 그런 그림이라는 것. 한 번도 먼 곳의 그럴 듯한 목표를 가진 적 없다. 오늘도 그냥 내가 되어가는 길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