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the place

2019/09/19 암스테르담

winterwald 2020. 9. 20. 01:42

사실 벨기에에서 네덜란드로 넘어온 건 9/18 수요일. 암스테르담에선 수-금 2박 3일 일정이었는데, 수요일 오후 늦게 숙소에 들어가서는 목-금 이틀간 무엇을 할지 일정 짜고, 2주 뒤 오실 부모님과의 북유럽 여행 계획을 세우느라 밖에 나가진 않았다. 프랑스에서 며칠 동안 모텔(외곽에 있는, 자동차 여행자들을 위한 저렴한 숙소) 같은 곳에서 지냈기에 암스테르담에서는 그래도 조금 가격이 있는, 깨끗한 숙소에서 지내기로 했고 그래서 더더욱 나가기 싫은 것도 있었다. 

 

 

벨기에-네덜란드 국경

 

반 고흐 뮤지엄은 온라인 예약이 필요하기에, 좋은 입장 시간대가 많이 남아 있는 금요일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를 갔느냐.. 일단은 투어리스트 인포로 가서(이름이 귀엽다 Iamsterdam visitor Center) 1인 85유로짜리 48시간 시티카드를 샀다.. 어차피 숙소가 외곽에 있으므로 하루에 두 번은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고, 생각보다 암스테르담 시내가 커서 방문할 장소와 장소 사이를 걸어다니는 것도 무리가 있었으므로 교통권은 일단 필요했다. 거기다 꼭 갈 예정이었던 국립미술관과 반 고흐 뮤지엄, canal cruise 비용이 카드에 다 들어가 있어 이래저래 계산해보니 시티카드를 사는 게 이득까지는 아니어도 각각 구매하는 것과는 비슷한 가격일 것 같았던 것이 구매 이유. 같은 가격이면 매번 계산할 바에 한 번에 계산하는 게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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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를 사고, 바로 트램을 탔다. 국립미술관까지 2.7키로미터기 때문.ㅋㅋㅋ

 

암스테르담의 Rijksmuseum은 언젠가부터 꼭 가야지 생각했던, 말하자면 꿈의 장소였다. 이전에 이런 저런 미술관을 떠돌면서 본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렘브란트의 <야경>도 볼 수 있기 때문. 아쉽게도 <야경>은 대규모 복원작업이 막 시작된 때였고,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카메라가 디지털 스캔을 뜨고 있었다(복원 작업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된다). 유리 너머로 멀리서 봤는데, 일단 크기가 듣던대로 정말 압도적이었고 렘브란트 특유의 빛이 그림에 곱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프란스 할스나 얀 스틴의 익살스러운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었고, 렘브란트, 베르메르(페르메이르)의 다른 유명한 작품들도 다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저런 질감과 저런 빛을 표현했지 싶은,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
Piano Practice Interrupted, Willem Bartel van der Kooi, 1813
이 그림 참 재미있었는데, 앞의 온갖 화려한 음식으로 대변되는 물질적인 것과 뒤에 작게 그려진 성경 삽화로 대변되는 신앙적인 삶의 대비가 주제.

 

회화 외에도 조각, 미니어처, 바로 위 사진과 같은 필름까지 다양한 매체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미술관은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다녔는데 이 건물이 미술관 용도로 1885년에 지어지면서 여기에 자리잡았다. 지어지고 나서 고흐도 구경하러 왔었던가, 그 전에 다른 궁전에 있었을 때였나. 아무튼 고흐가 야경을 보고 갔던 사건을 책에서 읽었던 게 생각난다. 또 빠질 수 없는 자랑거리가 도서관인데, 연구 중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조용히 위에서만 보고 나와야 한다. 이런저런 도서관을 보는 게 너무 즐거웠다 유럽에선.

 

 

<야경> 맞은 편 홀의 벽은 사상가들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꽉 채우고 있다. 플라톤과 토마스 아 켐피스.

 

나와서는 바로 렘브란트의 집으로 갔다. 여기도 시티카드에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음. 어째서인지 사진이 달랑 한 장뿐이다. 렘브란트의 개인 공간 뭐 이런 거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여기는 에칭 작품이 주를 이루는 곳으로, 회화가 아닌 렘브란트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색달랐다. 매체가 달라지면 표현 방식이 달라지고 그러면 표현의 내용까지도 다르게 전달될 수 있기에, 드로잉이나 에칭으로 보는 렘브란트는 회화로 알던 렘브란트와 비슷하면서도 더 솔직하고 투박했다. 작업실도 있고 개인 컬렉션 방도 있다. 이 시대의 컬렉터들이 많이들 그런 것 같은데 오브제로 쓰기 위해서 희한한 걸 참 많이 모았더라. 

 

 

 

나와서 암스텔담을 한 바퀴 도는 운하 크루즈를 탔다. 왜? 시티카드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날씨가 아주 좋지는 않았다. 스톡홀름에서도 코펜하겐에서도 계속 크루즈를 하게 되는데.. 북유럽은 다 그런 것인지? 암튼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넘 사랑스럽고, 뜬금없이 확실히 남유럽보다는 중부 유럽 이북이 그냥 내 성향이랑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릴렉스된 것도 좋지만 절도 있는 게 더 좋다. 조금 고독하더라도.

 

 

매어놓은 자기 배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위의 사진처럼 배 위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노는 사람들도 많았다. 관광객인지 현지인인지는 불분명.
기울어진 건물들

 

휴대폰으로 지금까지 내가 찍은 노을 중에, 눈으로 보는 것과 가장 비슷하게 나왔던 노을이었다. 멋진 노을을 뒤로하고, 뭐라도 먹어야 했다. 점심에도 미술관에 있느라 제대로 뭘 못 먹었기 때문. 아 그전에 시내를 걸으면서 기념품을 이것저것 구경했는데, 확실히 미피와 튤립 관련 물건들이 많다. 하나 살까 했지만 역시 꼭 맘에 드는 게 없어 패스. 저녁은 쌀국수. 식당을 검색해 앉았다. 상호는 Pho King. 뜨끈한 국물을 들이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데, 맛도 최고라니. 암스텔담에서 먹은 거 중에 제일 맛있는 거 이거였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우리의 마지막 일정은 역시ㅋㅋ 카드에 포함된 free drink. De Drie Fleschjes라는,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테이스팅 하우스(since 1650)에 가서 더치 진(jenever)을 한 잔 공짜로 마시는 것이다. 술을 좋아하지만 증류주에는 큰 관심이 없기에 그냥 경험 삼아 다녀왔다. 친구들끼리 맥주 마시러 온 사람들도 있고 사람이 꽤 있어서 크게 어색하지 않게 카드를 스캔하고 한 잔 받아 마실 수 있었다. 남편은 오리지널, 나는 과일이 들어간 조금 약한 걸 마셨는데 그냥 엄청 셌다는 기억뿐.

 

 

기분 좋은 상태로 찬바람을 맞다가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하루가 더 남아 있다. 대망의 고흐 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