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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a reader

마르타 아르헤리치

<마르타 아르헤리치>, 올리비에 벨라미, 2018 (원서 2010)


아르헤리치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여정을 담은 평전이다.

글의 톤이 무겁지 않고 웃음이 나오는 순간도 자주 있으며 무엇보다 마르타라는 한 개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든다. 연주를 돌연 취소하는 무책임한 모습마저도 그녀 자체의 한 부분으로 (거부감 없이) 이해되게끔 하는 서술을 보면서 문득 생각한다. 누군가의 평전을 쓴다는 것은 그/그녀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만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이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의혹과 비난의 눈과 손을 가지고 쓴 평전이 어딘가에 있을까?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은 평전을 쓰지 않겠지.


어머니인 후아니타가 그야말로 대장부다. 재능을 가진 딸을 결국 비르투오조로 만든 것은 그녀가 아닌가. 선생님을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레슨을 따내고, 혹독한 연습을 시키고.. 비상한 기억력과 곡에 대한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이해 등 마르타의 천재성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테크닉을 갈고 닦는 유년기의 그러한 시절이 없이 지금이 가능할까? 결국 연주를 하게 되었다고 해도 아마 아주 다른 타입의 플레이어가 되었을 것 같다. 


누가 말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넬슨 프레이어는 강아지의 얼굴을 한 고양이고 마르타는 고양이의 얼굴을 한 강아지라고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넘나 직관적인 설명 ㅎㅎ 곁을 안 내줄 것 같이 보이는 마르타지만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누구든 자기 집을 드나들도록 문을 열어놓았던 사람답게 그녀와 함께한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책에 등장한다. 굴다, 뒤투아, 프레이레, 루빈스타인, 미켈란젤리, 호로비츠, 뒤프레, 코바세비치, 바렌보임, 하스킬, 리히터, 로스트로포비치, 폴리니, 마이스키, 번스타인 등등등 다 언급하자면 끝도 없고. 이들과 마르타와의 일화뿐 아니라 각각의 음악적 행보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평가가 나와서 이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름은 잘 알지만 많이 듣지는 않았던 사람. 생각해보니 2012 Essen에서 직접 연주도 갔는데 크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 들은 스케르초 3번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아무튼 책을 읽은 결과로 그녀의 슈만과 라벨은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듣게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일 크게 웃었던 부분을 인용하면서 마무리.


"스물한 살의 마르타는 멘토를 원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자신을 이해해주는 업계 동료를 원했던 걸까? 도이치 그라모폰 사는 그녀가 재충전을 하는 동안 매달 500마르크를 보내주었다. 마르타가 두 장의 음반을 더 내기로 계약되어 있었으므로 이 돈은 일종의 투자금이었다. 이 거대 음반사는 위대하면서도 허약하고 과민한 피아니스트들에게 익숙했다. 그 무렵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전기충격 치료를 받고 있었고 미켈란젤리는 걸핏하면 수도원에 틀어박히곤 했다. 나중에는 리흐테르가 바닷가재를 줄에 매달고 산책을 다닐 것이며, 글렌 굴드는 소 떼를 몰고 밭으로 나갈 것이다・・・・・・.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의 기괴한 행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록 가수들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