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고 많고 탈도 많았던 11월 18일 노이스(Neuss) 인젤 홈브로이히 뮤지엄 (이하 내 맘대로 인젤) 방문기.
가 있는 동안은 마냥 아무 생각없이 좋았는데 찍어 온 사진 찬찬히 보자니 뭔가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뭐다? ㅋㅋ) 아마 너무 비현실적인 공간이라서 그랬나보다. 그래. 그 곳은 너무 현실 같지가 않았다. 원래 사람이 없는건진 잘 모르겠지만 3시간 동안 그 넓은 곳에서 Kasse에 있는 두 분을 합쳐서 열 명도 못 봤다. 거기다 초겨울 특유의 정취까지 합쳐져서 해질 때 즈음엔 조금 으슥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인젤 홈브로이히는 NATO 로켓 기지로 사용 되던 곳 (노이스엔 나토 기념품 가게도 있음)을 칼 하인리히 뮐러라는 사람이 사서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라고 한다. 그치만 말이 미술관이지 - 물론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으니 미술관 맞다. - 한 때는 기지였다보니 오랜 시간동안 별다른 개발 없이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작품 감상을 위해 만든 공간이라는 느낌 보다는 건축물들이 자연 속에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는 느낌이다. 인젤(Insel)이란 독일어로 '섬'이라는 뜻이니, 이름은 홈브로이히 섬 박물관 정도 되겠다.
인젤이 있는 노이스라는 도시는 베스트팔렌의 최대 도시 중 하나인 뒤셀도르프와 인접한 작은 도시이다. 인젤까지 가는 데는 검색 결과 여러 방법이 있는 듯 하다. 뒤셀이 워낙 크다 보니 노이스로 가는 Strasse Bahn도 있고 (25분 정도 소요,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면 된다), 혹은 뒤셀 중앙역에서 노이스 역까지 기차로 가서 버스를 타도 된다. 적으니까 간단한데.. 이 날의 운명이었는지 노이스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8시 21분 기차를 타려고 뒤셀에 도착하니 10시 40분 정도. 54분 709번 S-bahn을 타고 버스를 탈 장소인 노이스 Landestheater에 내리니 11시 20분 정도였다. 내가 검색한 결과 버스는 30분마다 있으며 다음 시간은 시간은 11시 36분이었다. 빵집에 들어가서 간단한 요기거리와 코코아를 사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ㅈㄱㄹ... 11시 대에는 버스가 없었다. 게다가 버스는 30분에 한 대가 아닌 한 시간에 한 대.. 그래. 그럼 다음 버스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았으니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노이스 시내를 구경하자. 라는 기특한 생각이 갑자기 번뜩 들었다.
일단 노이스 대성당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크로와상과 코코아를 우적우적 꿀꺽 먹고 마셨다. 그리고 다가간 노이스 대성당은, 아. 정말이지. 인상적인 양식이었다. (아는 게 없으니까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검색 결과 '로마네스크 양식에서부터 고딕 양식까지 다양한 시대의 건축 양식이 고루 혼합된 모습으로, 독일에서는 건축적으로 독보적인 성당' 이라고 한다. 여튼 여느 독일 성당 양식과는 다른 특이한 게 맞긴 하군. 미사 중이어서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내부도 만만치 않다고 하니 꼭 다시 가 보아야지 싶다.
모양이 인상적인 문고리. (이렇게 흐릿하게 나올 줄 몰랐다요.)
토마스 쿡. 순용님은 여기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을까.(ㅋㅋ)
이제 12시 30분이 되었다. 다시 정류장으로 가서 기다리는데 전광판에 내가 타야 할 877 표시가 안 뜬다. 옆에 지나가는 언니들에게 물어보니 안 뜨는 번호도 있으니 기다리면 올 거라 했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는 877.... 같은 종점 이름을 달고 있는 버스 869가 한 대 지나갈 때 예감이 불길하긴 했다. 그 때 다가가서 '아저씨, 인젤 홈브로이히 가나요?' 라고 물었어야 되는데... 869가 저만치 멀어진 후 869의 노선도를 게시판에서 확인해보니 877과 거의 같은 노선이었다. 비록 혼자 있었지만 험한 말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 한 시간을 기다려야 다음 버스가 온다고 생각하니 울고 싶었지만 뭐 다른 방법도 없었다. 어떻게 한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869가 왔고, 나는 덜덜 떨며 버스에 올라탔다. 진짜 웬만하면... 아니 지금까지 내가 탄 모든 버스는 내부에 전광판이 있었다. 다음 정류장을 알려준다. 근데 이 버스는.. (돌아올 때 탄 877도...)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사람들이 블로그에서 버스 아저씨한테 꼭 부탁해 놓으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치만 난 노선도를 찍어 왔으니까 :) 정류장 설 때마다 정류장 이름 보고 확인해서 착오 없이 내렸다. (뿌듯) 근데 내리니 이건 정말 무슨.. 음.. 아주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당황해서 독일 청년에게 인젤에 어떻게 가냐고 물으니 민망하게도 바로 길 건너에 표지판이 있었다.
그리고 들어선 인젤 홈브로이히 (뮤지엄).
이 사진의 풍경들이 보이는 순간부터 나는 정말 진심으로 소리내서 '하..' '진짜 미쳤다' '어떻게 이렇지'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사실 아무도 없었으니 가능했음) 봄, 여름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지금 이 계절에 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정반대였다. 이제는 슬슬 저물어져 가는 것들, 황량함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보이는 첫 번째 건축물. 이름하여 Turm,
천장은 불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유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자연광이 들어오고, 네 면에는 다 유리문이 있다. 천장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것도, 가운데 서 있는 기둥들도,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도, 외부 벽의 벽돌 색깔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맘에 쏙 들었다.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어도 이렇게 좋아하게 만들다니, 대단한 작품인 것 같긴 하다.
다음 건물을 향해 가는 길. 호수도 있고, 풀밭도 있고, 키 큰 앙상한 나무들도 있다.
다음 건물 안에는 아주 많은 종류의 조각과 그림이 있는데, 아시아에서 온 불상이나 토우도 있다. (중국 한,당,명대)
외관은 이렇게 생겼다. 이런 벽이 정사각형 형태로 네 면을 이루고, (사진에서는 잘 안보이지만) 키큰 나무들이 다시 네 면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그 나무들 한 중간에 살짝만 틈이 있어 길로 나갈 수 있게 되있다.
3번 건물을 나와 걷다 보면 곧 카페테리아에 도착하게 된다. 카페테리아에서는 공짜(!!)로 약간의 음식을 준다. 빵, 샐러드, 감자, 고구마, 달걀, 음료수 등을 부페식으로 먹을 수 있다.
카페테리아에서 기분 좋게 일어나 걷다 보면 15번 건물로 가게 된다. 문을 못 찾아서 두리번거렸지만 이내 입장.
이 전시실엔 약간의 설치미술과 드로잉들이 있는데, 아래 사진에 보이는 벽은 렘브란트의 드로잉이 모여있는 벽이다. 렘브란트는 주로 유화로만 만났었는데 드로잉이 훨씬 더 재미나고 익살스러워서 한 눈에 반했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구름 한가득이었던 하늘에 햇살이 뜨든! 독일의 햇빛은 금색이 풍부한 우리의 그것과 달리 조금 더 눈부시고 희뿌연 색깔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날 이 곳에선 (그러한 편견을 깨준) 황금빛 가을 햇살이었다.
다음은 14번 건물. 건물 이름은 '12개의 방 집' (직역이니 뜻만 캐치합시다.ㅋㅋ)
아까 3번도 그렇고 14번도 그렇고 밖에서 볼 땐 그냥 정사각형인데 안에는 12개의 분리된 공간이 존재한다. (3번은 몇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12개가 기계적으로 똑같이 나눠져 있는게 아니라 벽을 자연스럽게 열어둬서 이동할 수 있게 해뒀다. 방 모양도 다르고 방끼리 이어져 있지만 또 분리돼 있는 그런 구조. 여기에도 귀여운 토우들이 있어서 담았다.
또 이런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my God, 이런 어메이징한 건물이 나온다. 바로 13번. 이름은 Tadeusz Pavillon.
여기까지 엄청 좋았는데,
이 의자들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갑자기 무서워졌다. ㅋㅋ
해는 져가고 사람은 거의 안 보이고, 아직 봐야 할 건물은 많고.. 이 때부터 발걸음은 빨라진다. ㅋㅋㅋ
그래서.. 그 이후 건물들은 사진도 없다.
어두워서 찍어도 어차피 잘 안 나왔을 거다. 빨리 걸었던 기억 밖에 없다.
나오는 길에 다시 마주친 2번 건물. 여긴 또 많이도 찍었다.
문 안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햇살 색깔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혼자 사진도 남긴다. ㅋㅋㅋ
이젠 진짜 눈에 띄게 해가 없어져가고, 나는 버스를 타러 인젤을 빠져 나왔다.
좋은 곳은 알리고 나눠야 한다는 마음으로 진짜 열심히 썼는데 이놈의 티스토리가 사진을 잘 인식을 못한다.
여튼 봄, 여름에 꼭 또 한 번 가보고 싶은 곳.
베스트팔렌에 오시면 인젤을 놓치지 마세요!
끝!
덧) 모든 사진은 아이폰 3GS로 촬영하였으니 화질은 이해하고 넘어가주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