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 금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스톡홀름에서 베르겐으로 이동. 원래는 목요일부터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일정이었으나 한국 태풍으로 인한 결항으로 토요일 오후에 베르겐에서 바로 만나는 일정이 되었다. 금요일 저녁 7-8시 즈음 아늑한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내일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뭘 하면 좋을까 검색하다가 그리그의 주택이었던 곳이자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중인 트롤하우겐에 가기로 했다. 그리그의 음악에 대단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아는 곡이라고는 피협뿐.. 그마저도 1악장..) 클래식 관련 명소를 빼먹기엔 아쉬운 나이기에. 우리 숙소는 시내였고 어차피 두 분을 마중하러 공항에 가야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도 중간에 있는 트롤하우겐이 적당했다. 다만 투어를 미리 예약을 못해서 확인한 투어 시간에 최대한 늦지 않게 가기로 결정.
시내에서 1번 트램(공항행)을 타고 Hop 정류장에 내려서 2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여기가 맞는지 충분히 의심이 생길 수 있는 길인데 구글 지도를 믿고 걷자.
Troldhaugen
★★★★★ · 박물관 · Troldhaugvegen 65
www.google.com
티켓에 가이드투어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까지 갔는데 티켓을 못 사고(투어 인원은 한정적일 테니) 못 보고(주택은 가이드투어 없이는 못 들어가니까) 돌아올 수도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우리는 티켓을 샀고, 가이드투어 시작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이리저리 배회했다.
가이드투어 시간이 다가오자 한두 무리의 단체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렸고, 20명 정도의 사람들과 함께 그리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전체적으로 어느 방 할 것 없이 사진 액자와 그림 액자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특히 첫 번째 방인가는 그리그 자신의 그림,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전시를 위해 배치한 거긴 할 테다.) 그 외에 특색 있는 물건 모으기도 좋아했는지 동양풍의 오브제도 몇 있었다. 솔직히 이 집에서 음악적인(?)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었고 그냥 경치 좋은 곳에서 넉넉하게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집안을 다 보고 나면 홀에서의 연주까지 쉬는 시간이다. 가이드는 오솔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그리그의 무덤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무덤이 없는 것.. 이게 사진을 이렇게 찍어서 그렇지 보통 무덤을 생각하고 찾으면 꽤 알아보기가 힘들다. 트롤하우겐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The gravesite: Nina and Edvard Grieg's tomb is located in the mountainside facing the lake. One evening when Edvard Grieg and his best friend Frants Beyer were out fishing on the lake, the last rays of the sunset hit that spot of rock. "There I would like to rest forever" said Grieg. After Grieg’s death, his cousin and architect, Schak Bull, designed the tomb. It is simple, yet poignant, with Grieg's name chiselled in runes.(griegmuseum.no/en/about-troldhaugen)" 룬 문자로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는 몰랐네. 석양의 마지막 광선이 비추는 자리를 자기의 쉴 곳으로 정해두었다니, 그리고 그 자리에 무사히(?) 묻힐 수 있었다니 그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가에 잠시 내려갔다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샌드위치랑 커피 시켰던 것 같은데 사진이 없다ㅠㅠ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먹은 건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따뜻한 곳에서 몸과 마음을 푼 다음에 간 곳은 아래의 콘서트홀! 들어가자마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홀이 몇 개나 있을까? 쓰면서 concert hall glass wall 이런 식으로 검색해보니 멋진 곳이 몇 군데 나오는데. 노스웨스턴 대학의 Mary Galvin Recital Hall이랑 리스본 Calouste Gulbenkian Foundation
각설하고, 스타인웨이가 작은 무대 정중앙에 예쁘게 놓여있는 이 홀에서의 연주는 40분 정도고, 베르겐 대학교의 교수인 피아니스트가 그리그의 음악만으로 구성된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연주는 잘 생각 안 나는 걸로 봐서 무난했던 것 같고, 솔직히 저 뒤의 풍경에 시선을 뺏겨 집중이 잘 안 되는 구조이긴 하다. 많은 다른 작곡가들처럼 그리그 역시 노르웨이의 전통 선율을 이용한 곡을 많이 작곡했는데, 그런 곡은 찾아듣지 않는 한 잘 들을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확실히 만족스러웠다. 이곳을 다녀온 후에 오히려 그리그 음악을 찾아듣게 되었으니 좋은 기회였던 셈.
연주를 들은 후 다시 20분을 걸어나가 트람을 타고 베르겐 공항에 도착했다. 10-20분 정도 기다렸을까 긴 비행에 지쳐 멘탈이 탈탈 털린 엄마 아빠가 나왔다 ㅎㅎㅎㅎ 태풍 때문이라지만 예상에 없던 긴 여정에 아무 잘못 없는 나까지 미안해지던.. 그래도 넘넘 반가웠지! 이때가 오후 2-3시 쯤이었을 거다. 숙소에 가서 짐을 넣고 그래도 베르겐 시내 구경이라도 하자! 싶어 지친 몸을 이끌고 나갔다.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