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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0 하나님을 원망하려고 했다가, 이건 원망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일어난 일이 슬프지만 내가 믿는 신을 원망할 일은 아니라는 걸 난 이미 알고 있고 믿고 있었다. 슬픔을 풀어내고 주시는 평강의 옷을 입으면 된다. 깨끗한 마음이 되기를 기도한다.
Psalm 43 Send out your light and your truth; let them lead me; let them bring me to your holy hill and to your dwelling! 지난 주부터 오늘까지 이 말씀을 세 번 마주쳤다. 첫 번째는 화요일인가 수요일에 지하철에서 성경 읽다가. 아무 생각없이 읽다가 let them에서 them이 뭔지 잠깐 생각했다.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달라고 하는 구절이 아니었다. 당신의 빛과 진리가 나를 이끌게 해달라는 것. 두 번째는 목요일 밤에 채널 돌리면서 잠깐 본 다큐ㅡ천사의 시ㅡ의 마지막 부분에 이 말씀이 나왔다. 눈을 의심했다. 세 번째는 지금 읽고 있는 '밤에 드리는 기도' 감사의 말 마지막 문장. 책을 읽으면서 시편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계..
아침이 밝아 올 때에 Paul Baloche의 Your name은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As morning dawns and evening fades You inspire songs of praise 우리말 가사는 이렇게 번안되어 있다. '아침이 밝아 올 때에 찬양의 맘 주시네' 찬양의 마음이 생길 때도 있지만, 아침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너무 괴로워서, 너무 아파서, 그냥 이 밤으로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 싶은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몸에 새겨진 회복에 대한 기대는 또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플 때, 약을 먹고 치료를 받고 당연히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나를 보며 새삼스레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그 어느 것으로도 치료가 되지 않을 때가 오겠구나, 그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2021/11/05 Happy anniversary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을 축하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잘 모르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지 않을까 최근에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은 아닌 거지. 그런데 부모 자식 간에는 가능한가보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는 잘 모르는 사람을 사랑한다. 지하철에서 눈물이 흘러 당황스러웠다.
2021/10/25 말이라는 발길질에 몇 번 차인 후 나는 말을 삼키게 되었다. 내 말로 누군가를 차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아무 소리도 내고 싶지 않았다. 작은 나, 없는 사람처럼 사는 나, 아무도 아닌 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나. 그런데 누군가의 말 때문에 버틴 것도 사실이었다.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부분적으로는 그 이유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21/08/23 #1 무소유보다는 향유라고 박총님께 배웠다. #2 며칠 전 길을 걷다가 올리버 색스의 이 구절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정말이지 적확한 통찰. 그러나 이렇게 느낄 수 있음도 특권임을 안다. #3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조정석의 코미디 연기고, 가장 별로인 건 억지스러운 감동 코드. #4 3년 전 즈음에 읽다 포기했던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다시 읽는다. 이건 시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문장들의 연속. #5 유튜브에서 도파민 디톡스 하는 사람의 영상을 봤다. 그리고는 트위터 인스타 로그아웃 유튜브 로그아웃했다. 티비도 안 보기 한 주간 실천.
내가 되는 꿈, 최진영 내가 되는 꿈,이라니. 나의 꿈이잖아. 어디선가 추천을 받기도 했지만, 제목이 나의 간절한 꿈이라서 아무런 정보없이 책을 쉽게 집어들게도 되었다. 읽으면서 중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던 길을 자주 떠올렸다. 학교 뒷문에서부터 몇몇 집이 감싸고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면 길은 황성공원으로 이어진다. 말이 공원이지 숲에 가까운 곳. 매일 매일 이곳을 지나 집으로 갈 수 있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행운이다. 가끔은 큰길로 걸어오다 도서관 쪽에서 공원으로 진입하기도 했다. 나와 친구들이 지나가면서 흘린 말도 안될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지금도 그 숲에 잠자고 있겠지. 정용준 작가의 발문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공감과 이해를 넘어서 그 인물이 내게 투사되는 경험. 어, 이건 나인데 하는 경험. 나도 할머니와 살았고, 나..